비 내리는 밤, 단청 위를 흐르는 빗물이 선명했던 오색의 경계를 수묵처럼 흔듭니다.
단청은 나무를 아름답게 꾸미는 색이면서, 오랜 비바람으로부터 나무를 지켜주는 보호막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상처를 견디기 위해 마음 위에 수많은 색과 선을 덧입으며 살아갑니다.
그 색들은 때로 본래의 얼굴을 가리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준 흔적이기도 합니다.
〈단청과 수묵〉은 모든 색을 지우고 무색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에 젖은 단청의 빛이 수묵처럼 흐려지는 순간,
자신을 지켜온 색은 그대로 품은 채
색과 색 사이에 남아 있던 고요한 여백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색은 남고, 선은 흐려집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다시 나의 숨을 발견합니다.